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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0일 충청북도 충주시 충주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일으킨 시위운동. 1960년 대통령 선거를 1개월 앞두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사망함으로써 자유당 대통령 후보인 이승만은 당선이 확실시되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이 나이가 많아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대통령직을 승계할 부통령 선거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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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0일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의에 따라 열린 미소공동위원회가 1947년 8월 12일 완전히 결렬되어 한국 문제가 표류하게 되자, 미국은 9월 17일 유엔 총회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정식 의제로 상정하였다. 9월 21일 유엔 총회 운영위원회가 유엔 총회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통과시키고, 23일 본회의에서 의제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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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부터 1여 년간 충주시가 기업 도시와 혁신 도시로 선정될 수 있도록 펼친 시민 운동. 노무현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는 수도권의 과밀화에 따른 제반 문제 해결과 지역의 균형 발전을 통한 새로운 국가발전의 성장 동력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기업의 지방 분산 육성과 국가 기관의 지역 분산이라는 관점에서 기업 도시와 혁신 도시라는 두 가지 어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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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국제 결혼으로 가족을 이룬 가정. 우리나라 사회는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1980년 장기 체류 외국인은 40,519명에 불과했다. 1997년 386,972명으로 늘어나고 2007년 9월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숫자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 4913만 명의 2%에 해당된다. 2003년 한국 남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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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복탄리에서 일어난 면사무소 이전 반대 운동. 1934년 당시 복탄리에 있는 소태면사무소의 건물이 오래되고 낡아 새로 짓게 되었다. 이에 양촌리, 야동리, 동막리, 구룡리, 주치리 주민들은 면사무소 개축을 기회로 면사무소가 면 서쪽에 치우쳐 있으므로 야동리 도로변으로 면사무소를 이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면사무소가 있는 복탄리와 덕은리 주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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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사회단체. 충주공립보통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적·사회적 지원을 목적으로 1926년 3월 3일 설립되었으며, 당시 회원은 3명으로 구성되었다. 1929년 후원회장은 윤정구(尹政求)가 맡고 있었다. 1928년 충주공립보통학교 후원회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추계운동회를 주최하였으며, 교직원을 위로하기 위해 일반 학부형들과 함께 위로연을 베풀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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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행정 자문기관. 조선총독부에서 지방 행정을 원활히 관할하기 위하여 충주면장의 업무 수행에 대한 자문 기관으로서 충주면협의원회를 설립하였다. 1920년 7월 조선총독부 제령 제13호에 의거해 면제가 제정되었다. 이후 1923년 2월 15일 충주면이 지정면이 됨으로써 충주면협의원회가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동년 5월 21일 충주면사무소에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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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유림 단체. 지역 유림들이 유교 문화와 사상, 예절의 보존과 더불어 지역의 효자·절부(節婦)를 표창하기 위해 1921년 설립하였다. 1925년 11월 1일 충주명륜당에서 충주군 내의 효자와 절부를 기리기 위한 표창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표창자로는 금가면 절부 유복남(劉卜男), 산척면 열부(烈婦) 엄지북(嚴芝北), 엄정면 효자 유지호(柳志浩), 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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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충주 지역 청년들의 상호 친목 도모와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2년 10월 23일 회원 5명으로 구성된 충주청년회가 설립되었다. 1923년 5월 20일 충주군청에서 충주청년회가 주최하고, 조선일보 충주지국이 후원하는 충주청년회 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같은해 5월 22일 충주공립보통학교에서 제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