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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부터 4월 초순까지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칠곡 지역에서의 3·1운동은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의 영향으로 전국 각처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의 소식을 듣고, 1919년 3월 12일 인동면 진평동을 필두로 같은 해 4월 9일까지 약목·석적 등지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운동이다. 대구에서 만세 시위 준비가 진행 중이던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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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 권영해(權永海)는 1888년(고종 25) 8월 12일 경상북도 대구시 내당동[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 있는 진평 교회 목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진평동 뒷산에서 진평동민 200여 명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틀 뒤인 3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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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5월 13일 칠곡군 인동면 인의동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때 인동면 진평동의 만세 시위를 선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때 인동면 진평동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의 학생인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를 가져오자 김도길(金道吉)·박봉술(朴鳳述) 등의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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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5년 9월 12일 칠곡군 약목면 복성동[현 복성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약목장터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다가 일본 군경(軍警)에게 계획이 탄로나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만주 용정(龍井)에서 6년 반을 지내다 1918년에 귀국하였다. 그 후 1919년 3월 11일 칠곡군 북삼면 숭오동의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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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3년 6월 16일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원의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의거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의 이상백(李相佰)을 중심으로 동지들과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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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3년 6월 15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전국적인 3·1운동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1일 마을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튿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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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2년 10월 13일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마을 주민들을 선도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의거 당시 진평동 주민 3백여 명이 3월 12일에 만세시위를 하다 주동자 중 8명이 검거되었다. 박봉술은 남은 동지 김도길(金道吉) 등과 14일에 다시 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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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2년 12월 24일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의거로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펼쳐질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이영식(李永植)·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14일 진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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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4년 5월 9일 칠곡군 약목면 평복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 평복리 마을 청년들과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지하수(池夏洙)와 함께 기산(岐山) 지역의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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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11월 22일에 칠곡군 기산면 평복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평복리 마을 청년들과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사건이 일어나자, 지하수(池夏洙)와 함께 기산(岐山)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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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6월 29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전국적인 3·1운동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거사 전날인 3월 11일에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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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4년 10월 8일에 칠곡군 칠곡면 읍내동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 때 한국광복군은 김원봉이 이끄는 제1지대와 이범석이 이끄는 제2지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1944년 당시 학도병이었던 배상갑은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 후 본부에서 활약하였다. 1940년 9월 17일에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1942년에 조선의용대를 편입하여 제1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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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8년 11월 21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서기옥은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 확산될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 이영식(李永植), 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3월 12일 마을 뒷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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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7년 3월 3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나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 이영식(李永植), 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시위에 참가하여 3월 12일 진평동 뒷산에 모인 군중 약 300여 명과 함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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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9년 칠곡군 약목면에서 태어났다. 1909년 대동청년당(大同靑年黨) 창립에 참여하여 지하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1915년에는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중앙총부에서 활동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김천지회(金泉支會)를 조직하였으며 잦은 구금과 고문의 여독으로 광복 후 1951년 11월 29일 사망하였다. 보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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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무정부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1885년 4월 26일에 칠곡군 북삼면 율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에 학생운동가 출신들로 구성된 무정부주의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고 1926년에는 연맹에 파괴단(破壞團)을 만들어 주요 관서와 일본인 점포 폭파 등을 추진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형을 받았다. 1925년 당시 대구노동위원회 농민부 위원과 대구노동친목회 상무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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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 때, 기독교 학생과 신도들을 중심으로 행진을 선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 대구는 2월말부터 이갑성(李甲成)이 기독교 목사 이만집(李萬集)에게 적극 권유하면서 분위기가 조성되어 갔다. 거사는 서문시장에서 장날인 3월 8일 오후 1시로 정하고, 남산(南山)교회, 제일(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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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7년 8월 8일에 칠곡군 북삼면 숭오동[현 북삼읍 숭오리]에서 태어나, 1919년 3·1운동 때 북삼·약목면 주민들의 약목장터 만세시위를 추진하던 중에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11일에 칠곡군 북삼면 숭오동의 기독교도 김익주(金益周)의 집에서 약목면에 사는 형 김익시(金益時)를 만나 양 지역 기독교도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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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3년 4월 1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 지역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의 옥고를 치르고, 더 강력한 항일 투쟁을 위해 노력하던 중, 1927년에 자결·순국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3.1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날 때,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인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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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6년 8월 15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대의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때 대구 거사가 준비 중인 3월 7일에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인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등사해 가지고 인동교회 목사인 이상백(李相佰)을 찾아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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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0년 12월 9일에 칠곡군 왜관면 매원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전국화를 추진하다 체포되었다. 1932년에는 농민조합건설준비협의회를 조직하여 항일 의식을 고취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총 2회에 걸쳐 6년을 복역하였다. 1927년 11월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京城第一公立高等普通學校)에 재학중 결사대에 가입하여 반일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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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1년 2월 17일 칠곡군 왜관면 석전동에서 태어나, 약목(若木)에 있는 동락의숙(同樂義塾)과 서울 보혜학교(普惠學校)를 수학하였다. 1919년에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여, 1920년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게 하였다. 1924년에 체포되어 복역 중에 병보석 되었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1927년에 순국하였다. 1913년 경상남도 밀양(密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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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1년 7월 29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전국적인 3·1의거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거사 전날인 3월 11일에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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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9년 2월 16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전국적인 3·1운동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거사 전날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튿날 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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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1898년 3월 12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태(笞) 90도(度)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 이영식(李永植), 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시위에 허도봉(許道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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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8일에 서문시장 만세시위 때 시위대의 행진을 선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 대구에서 이만집(李萬集) 목사가 주도하였다. 거사는 서문시장에서 토요일 장날인 3월 8일 오후 1시로 정하여 남산(南山)교회, 제일(第一)교회, 서문(西門)교회와 성경학당(聖經學堂), 계성(啓聖), 대구고보(大邱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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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5월 7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 이영식(李永植), 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14일 진평동 뒷산에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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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9년 11월 16일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 이영식(李永植), 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14일에 진평동 뒷산에서 시위 군중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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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9월 17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해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전국적인 3·1운동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거사 전날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튿날 뒷산에 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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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3년 10월 20일에 칠곡군 약목면 각산동[현 기산면 각산리]에서 태어났다. 약관에 광복군에 입대하여 징모(徵募) 제3분처에서 지하공작 활동을 했으며 광복을 맞아 귀국한 후에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치안국장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1944년을 전후로 중국 각지의 일본군 점령지를 탈출해 온 광복군 동지 박승학(朴承鶴), 김해일(金海一) 등 수십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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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12월 20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평복동[현 기산면 평복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평복마을 청년들과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형을 받았다. 1919년 3·1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장상흠은 기산(岐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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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유림(儒林) 대표 독립운동가. 1851년(철종 2) 10월 24일에 칠곡군 약목면 각산동[현 약목면 각산리]에서 전 형조참판(刑曹參判) 장시표(張時杓)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 후기 성리학의 거두 이진상(李震相)에게 사사하였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지방보상 회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때,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전국 유림들의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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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8년 7월 8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현 석적읍 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석적면 중동의 선비였던 장영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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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0년(고종 7) 8월 24일에 칠곡군 석적면 성곡동[현 성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가운데, 4월 9일의 성곡동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2월 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석적면 성곡동·중동에서는 문중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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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고종 32) 6월 6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옥계동 문림(文林)마을에서 장성욱(張聖旭)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에 만주·러시아 등지에서 한인들을 군사 훈련을 시켰으며 1927년 조선은행대구지점에 폭탄을 터뜨리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자, 1930년 7월 31일에 옥중에서 자결·순국하였다. 인명학교(仁明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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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9년 2월 10일에 칠곡군 약목면[현 기산면] 평복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평복마을 청년들을 선도하여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지하수(池夏洙)는 인근 마을 청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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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60년(철종 11) 7월 3일에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에서 태어났다. 궁중 호위국에 근무하던 1905년(고종 42)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매국 역적들을 처단하려는 거사 자금을 지원하였다가 체포되어 10년 유배형(流配刑)을 받았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당시 궁중 호위국원(扈衛局員)이던 최익진은 매국 역적들을 처단하려는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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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3·1운동기 때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 인사들이 참여한 학생 비밀결사. 혜성단(彗星團)은 1919년 4월 17일 대구 계성학교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칠곡 출신의 이영옥, 이명건, 이수건 등이 참여한 비밀결사이다. 혜성단은 1919년 3월 8일부터 전개된 대구의 만세시위 운동이 일제의 탄압으로 말미암아 지방으로 확대되어 가는 1919년 4월에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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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3년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에서 태어났다. 중국 상해(上海) 임시정부 경위대원을 거쳐, 중경(重慶)에서 광복군(光復軍) 제1지대(支隊) 본부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17일 중경에서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이 정식 창설되었으나 초기에는 중국 정부의 원조를 받으면서 작전상의 통제도 받았다. 1942년 계림(桂林)에 있던 조선의용대(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