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2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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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巨淵部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강래업 |
[정의]
전근대 시기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 일대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개설]
각종 지리지에 따르면 청도군에는 일찍이 밀양군의 임내(任內)인 두야보 부곡(豆也保部曲)이 있었다고 한다. 청도군에 직접 속한 부곡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청도군 읍지(1879)』에 의하면 매전 부곡(買田部曲)[역이 있음], 북곡 부곡(北谷部曲)[군 동쪽 25리(9.818㎞)], 부곡 부곡(釜谷部曲)[군의 북쪽 15리(5.891㎞)] 등 3곳이 있으며, 『청도 문헌고』에는 위 3곳 외에 거연 부곡(巨淵部曲)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청도군 읍지인 『오산지(鰲山誌)』[1673년]에는 부곡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오산지』가 편찬될 당시인 17세기 후반에는 청도군에 부곡이 이미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청도군의 남쪽에 있었던 거연 부곡은 오늘날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에 있었다. 거연 부곡에 관한 기록은 일제 강점기에 편찬된 『청도 문헌고』 연혁 고적 조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거연 부곡을 설치한 목적은 알 수 없다.
거연 부곡이 설치된 곳인 거연리는 쇠점, 단산, 사기점 등의 작은 부락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연리의 쇠점에서는 철기를 생산하였으며, 사기점 부락에서는 각종 토기나 옹기를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거연리의 중심 부락인 단산(丹山)은 주변 지역에서 쇠를 다루던 가마가 많았기 때문에 불산으로 불렀으나 뒤에 불산을 한자로 단산(丹山)으로 바꾼 것으로 이해된다.
거연 부곡은 수공업에 종사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로 철기 생산 외에도 각종 옹기나 사기그릇을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청도 문헌고』에만 유일하게 기록된 거연 부곡은 일찍부터 철기와 각종 토기나 사기를 생산하는 수공업자들의 집단 거주지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까지 전해오는 마을 이름인 쇠점, 단산, 사기점 등에서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될 당시인 16세기경에 부곡이 해체되는 일반적 추세에 따라 거연 부곡도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면리제에 따라 청도군 하남면(下南面) 혹은 내종도면(內終道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청도군 대성면에 속했다가 8·15 해방 이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연 부곡은 현재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 일대로 추정되며 『청도 문헌고』 연혁 고호(古號)에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일찍부터 청도군에 속한 부곡이다.
청도 지역에 설치된 부곡은 대부분 수공업에 종사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로 『오산지』가 편찬될 17세기에는 이미 부곡이 없어졌다. 거연 부곡도 철기나 각종 토기를 생산한 천민들의 집단 거주지로 추정되며, 거연리 일대의 지명에서 이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