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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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七星里-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칠성리 111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성용 |
현 소재지 | 칠성리 상여집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칠성리 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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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상여집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칠성리에 있는 상여를 보관하는 집.
[개설]
상여집은 마을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여를 보관하는 장소이다. 일반적으로 상여와 상여집은 마을 주민들이 ‘계’ 형태의 사회 조직을 운영하여 시설의 관리 및 일체 경비를 충당한다.
[위치]
각남면사무소에서 화양읍 방면으로 국도 20호선을 따라 2㎞ 정도 지나면 각남 교차로가 나온다. 각남 교차로 남동쪽 소로를 따라 1.6㎞ 정도 가면 논 가운데에 칠성리 상여집이 있다.
[변천]
임진왜란 때 창의한 장방호(張邦豪)가 의병들의 무기고로 사용하였으며, 일제 강점기부터 마을의 상여집으로 사용되었다. 상여집에 보관중인 상여는 20여 년 전부터 사용하는 이가 없다.
[형태]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며, 내부는 통간이다. 얕은 자연석 기단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기둥 바깥으로는 두꺼운 토석 벽을 기둥 높이까지 쌓았다. 그 위에 간략한 3량가를 꾸몄다. 동 측면에 출입문인 쌍여닫이 띠장널문을 달아 드나들도록 하였다.
[현황]
칠성리 향죽 마을에서는 상조계를 조직하여 상여와 상여집을 관리하였는데,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여집에 보관중인 상여를 사용하였다. 현재에도 마을 주민들은 상조계를 운영하면서 정월 보름이 되면 ‘큰 모구제’를 할 때 ‘문서 닦는다’고 하여 대동회를 열어 결산을 보고하고 상조계 문서를 정리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사용하던 상여는 20여 년 전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이 상여집을 특별히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