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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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윤제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행해지는 가신 신앙 중에 조상의 영을 단지에 모시는 풍속.
[개설]
시준단지는 조상 단지라고도 하며 ‘세존단지’라고도 말한다. 시준단지는 가정의 무사 안녕과 가족의 소원 성취, 풍년을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단지이다. 청도에서는 시준단지를 ‘시준할매’라고도 부른다. 시준단지는 대물림하여 모시는 경우와 집안에 우환이 생겨서 무당이나 점쟁이라 권하여 모시는 경우가 있다. 청도 지역에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으나 세대가 변하면서 지금은 모시는 집이 하나둘 없어져 가고 있다.
[연원 및 변천]
가신 신앙인 시준단지를 언제부터 모셔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서민들은 집집이 조상을 모시듯 모셔 왔다. 마루에는 용신을, 부엌에는 조왕신을, 변소에는 측신을 모셔 왔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마을 운동과 미신 퇴치 운동으로 민간 신앙이 천시되고 천대받으면서 하나둘 사라져 갔다. 그런 와중에도 시준단지만은 버리지 못하고 아직껏 모시고 있는 집이 더러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당은 따로 있지 않고 대부분은 집의 한 모퉁이에 각진 곳에 삼각으로 선반을 만들어서 그 위에 모시는 것이 통상적이다. 신체는 조그마한 간장 단지와도 같은데, 시월 초순이나 손이 없는 날[음력으로 9일, 10일, 19일, 20일, 29일, 30일]에 새로 추수한 쌀을 넣고 한지[창호지]로 덮어 묶어 둔다. 시준단지를 없애려면 시준단지를 받들던 안주인이 세상을 버렸을 때 “시준단지도 함께 가져 가세요.”라고 하면서 상여 뒤에 매달아 보낸다.
[절차]
청도 지역에서는 시준할매의 쌀을 음력 시월이나 섣달, 특히 그믐에 주로 바꾸는데 시준단지 안에 쌀을 햇곡식으로 교체하는 일을 ‘재미한다.’라고 하며 교체하는 절차는 대부분의 민간 신앙과 비슷하게 안주인이 실행한다. 안주인이 단지 안의 쌀을 갈아 넣을 때는 먼저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과일과 쌀 한 그릇을 준비하고 정화수를 떠 놓고는 단지를 내린다. 그다음으로 단지 안에 담겨 있는 묵은쌀은 깨끗한 그릇에 담고 햅쌀로 바꿔 넣는다. 그러고는 깨끗한 창호지로 덮고 나서 창호지를 꼬아 만든 끈이나 실을 이용하여 뚜껑으로 삼는 창호지를 묶는다.
쌀을 바꿔 넣은 다음에는 촛불을 켜고 절을 몇 번 한다. 그런 뒤에 집안의 무사 안녕과 자손들의 운수 대통을 기원하며 손을 비비면서 주문을 왼다. 이것을 비손이라 하는데 비손이 끝나면 집안 식구 수대로 단지 안의 묵은 쌀로 밥을 해서 가족끼리만 먹는다. 밥을 지어 먹을 때는 채소로만 반찬을 하고 비린 것[생선]과 누린 것[짐승]은 사용하지 않는다.
[축문]
무당 등 무속인이 빌면 축문이 있지만 일반 주부가 할 때는 생각나는 대로 손을 비비면서 주문을 왼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저 시준할매, 우야든동[어쨌든] 저 몽매하고 어린 손자들, 올 한 해 열두 달 삼백육십 일 동안 그저 아무 탈 없게 하여 주시고, 저 손자들이 어디를 오가든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 남에게 피해당하지도 않게 하여 주시고, 일 년 열두 달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돌봐 주시고, 할매가 두루두루 돌봐 줘서 하는 일마다 재수 있게 하여 주시고 어딜 가도 굶지 않고 잠 잘 자게 하여 주시기를 두 손 모아 비옵니다.”
[부대 행사]
옛날에는 시월상달에 가을걷이가 끝나면 안택을 하면서 모두 함께 가신들을 청해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하였으나, 시절이 바뀜에 따라 다른 가신 신앙을 접은 가정이 많다. 그러나 아직은 시준단지를 버리지 못하고 모시는 집이 많이 있으며 다만 의례 절차는 많이 간소화되었다.
시준단지 안의 쌀을 바꿔 담을 때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아이가 태어난 집이 생기면 부정한 일이라 하여 다음으로 미루어서 한다. 시준단지 안의 쌀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다른 집에는 줄 수가 없다. 시준단지 안의 쌀을 바꿔 담은 다음에 사흘간은 딸이나 며느리가 아이를 낳아도 가지 않는다.
[현황]
지난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가신 신앙은 집마다 대부분 민간 신앙으로 모셔 왔으나, 그 이후로 새로운 외래 종교의 영향과 가옥의 서구화로 정서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생활의 변화가 민간 신앙은 물론이고 가신 신앙마저도 몰아내면서, 마치 전근대적인 시골구석에서나 고리타분하게 믿는 미신으로 대우받으며 천시되어 사라져 가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