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청도 내리 가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576
한자 淸道內里窯址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리 산103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2년 5월 6일연표보기∼2002년 5월 30일연표보기 - 청도 내리 가마터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소재지 청도 내리 가마터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리 산103지도보기
성격 요지|가마터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옹기 가마터.

[개설]

중앙 고속 도로[부산∼대구 간 고속 도로] 건설 부지에 포함되어 일부 발굴되었다. 발굴 결과 조선 시대 옹기 요지로서 회구보 1기와 수혈 유구 1기 등이 조사되었다.

[위치]

청도읍에서 대구 방향으로 국도 25호선을 따라 약 4㎞ 가면 경상북도 청도 교육 지원청이 있다. 이곳에서 덕암리 방향으로 가는 작은 도로를 따라 1.5㎞ 가면 새각단 마을이 있다. 새각단 마을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골짜기를 따라 중앙 고속 도로 밑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청도 내리 가마터가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중앙 고속 도로 건설 부지에 일부 포함되면서 발굴된 청도 내리 가마터는 청도군과 경산군의 경계에 위치한 용각산[해발 629.9m]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의 남쪽 사면에 있다. 경사가 심하며, 10여 기의 민묘가 조성되었다가 이장되었다. 조사 구역이 위치한 능선의 남쪽은 대부분은 경지로 정리되어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다. 조사 구역의 남쪽은 절토하여 진입로가 만들어졌다. 조사 대상 지역의 주변에는 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데, 남쪽으로는 청동기 시대의 진라리 유적, 무등리 고인돌 떼가 위치하고, 남동쪽에 청동기 시대의 송읍리 유적과 삼국 시대의 송읍리 고분 떼가 위치한다.

발굴 과정에서 조선 시대 옹기 가마의 회구부와 수혈 1기가 확인되었으며, 옹기 가마는 확인되지 않았다. 옹기 가마 회구부의 규모는 잔존 길이 11.5m, 너비 3.8∼6m, 잔존 깊이 45㎝이다. 평면 형태는 경사면 위쪽에서 아래로 부채꼴로 벌어진 모양이며, 경사면 아래쪽은 삭평과 교란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는다.

회구부 내의 퇴적 양상을 확인하기 위해 회구부의 중앙에 남북 토층 둑 1개와 동서 토층 둑 2개를 설치하여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3개의 퇴적층이 확인되며, 이중 1·2층에서 소토와 벽체, 옹기 조각들이 집중적으로 확인되었으며, 3층은 회구부 내 서편에서만 확인되는 층으로 유물은 포함되지 않았다. 회구부의 북편에서 벽체 조각과 옹기 조각들이 집중되어 확인되었으며, 남쪽으로 가면서 확인되는 유물이 적어졌다. 회구부 내의 동편과 남서편의 바닥에서 수혈이 확인되며, 토층 조사 결과, 회구부 조성 시에 굴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물은 옹기 구연부 9점, 돌도끼 조각 4점, 뚜껑 1점, 토제 도침 2점이 출토되었다. 대부분의 옹기들은 조각들로 기형을 확인할 수 없었다.

회구부 내에서는 조선 시대의 옹기 조각과 가마 벽체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확인된 유구가 소성된 옹기 중 상태가 불량한 것을 버리는 폐기장의 성격으로 출토된 유물들도 대부분 구연부와 저부, 동체부, 파수 등의 편 등 15점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현황]

청도 내리 가마터중앙 고속 도로 건설 부지에 포함되어 현재는 가마터에 고속 도로가 건설되었으며, 가마터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은 없다. 발굴된 유물들은 발굴 주체인 영남 문화재 연구원을 거쳐 국립 경주 박물관으로 이관되어 관리 중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3.23 한자항목명 수정 淸道內裏窯址 -> 淸道內里窯址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