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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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君子亭講學會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80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태호 |
설립 시기/일시 | 1919년 - 군자정 강학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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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군자정 강학회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800 |
성격 | 강학계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 있는 유교 단체.
[개설]
군자정(君子亭) 강학회(講學會)는 군자정 강학계(講學契), 혹은 강계(講契)로 부르며, 고성 이씨 입청도조(入淸道祖)인 모헌(慕軒) 이육(李育)의 유덕(遺德)을 기리고 지역의 문풍(文風)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고성 이씨 문중이 중심이 되어 1919년에 조직하여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는 시회(詩會)를 겸한 강학계이다.
[설립 목적]
고성 이씨 청도 입향조인 모헌 이육은 일찍이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문하에 나아가 성리학에 근거한 효제충신(孝悌忠信)의 실천 도학(實踐 道學)의 학문을 익혔다. 그러나 무오사화로 백형 쌍매당(雙梅堂) 이윤은 거제도로, 중형 망헌(忘軒) 이주(李冑)는 진도로 유배되었다. 이어서 갑자사화에는 진도에서 제주도로 이배되었던 망헌이 참형되고, 부모는 부관 참시를 당하는 큰 화를 입게 되었다. 큰 어려움을 당한 이육은 세상의 뜻을 버리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안동에서 청도로 옮겨와서 지금의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 은거를 하였다.
이육은 마을 앞에다 못을 넓히고 주돈이(朱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나오는 “蓮(연)은 花之君子者也(화지군자자야)”라는 뜻을 따라 연(蓮)을 심고 못 위에 정자를 지어 군자정이라 하였다. 군자정에서 때때로 문우들과 시정(詩情)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후진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유유자적한 여생을 보냈다. 당시에 남긴 문적(文籍)이 많았을 것이나 거듭된 병화와 오랜 세월 동안에 지금은 유작(遺作)이 전하지 않는다.
이러한 삶을 살다간 이육의 유덕을 기리고 지역의 문풍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시회를 겸한 강학을 목적으로 고성 이씨 문중과 지역의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1919년에 군자정 강학계를 조직하여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군자정 강학회는 매년 음력 8월 18일을 정일(定日)로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군자정에서 시회를 겸한 강학을 한다. 이 때 청도 지역뿐 아니라 멀리 다른 지방에서도 많은 유학자들이 참석한다. 계원들은 강학계가 열리기 전에 전년도에 미리 알린 운(韻)에 따라 각자 한시를 한 편씩 지어 참석한다. 각 계원들이 지어온 한시를 제출하면, 제출된 시를 선별하여 낭송회를 연다. 낭송회가 끝난 뒤에는 제출된 시편을 모아 책으로 편찬한다.
시 낭송회가 끝나면 경서(經書)를 암송하고 강평(講評)을 하는 강학이 열린다. 최근에는 한학(漢學)을 하는 유학자들이 점차 줄어들면서 강학의 열기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현황]
군자정 강학계는 강장(講長)이 중심이 되어 고성 이씨 문중의 대표인 문임(門任)과 함께 운영한다. 운영 경비는 고성 이씨 문중에서 부담을 하며, 한학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계원이 될 수 있다.
2012년 현재 군자정 강학계 계원은 약 200여 명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학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듦에 따라 매년 행사를 치르는데 어려움이 있다. 현 시대에 맞게 현대시를 짓는 쪽으로 시회를 열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전통을 이어가자는 쪽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시를 짓고 경서를 바탕으로 강학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선조들의 유덕을 기리기 위한 사업으로 고성 이씨 문중을 중심으로 시작된 군자정 강학회는 지역의 유학과 한문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여 왔다. 앞으로도 이러한 지역 문화 활동을 통하여 점차 맥이 끊어지고 있는 전통 학문과 윤리 도덕을 계승할 수 있으며, 우리의 전통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