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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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容禧頌德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이서면 토평리 602-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채광수 |
건립 시기/일시 | 1914년 - 김용희 송덕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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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914년 - 김용희 송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915년 - 김용희 송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921년 - 김용희 송덕비 건립 |
현 소재지 | 전 참봉 김용희 송덕비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602-2 |
현 소재지 | 전 참봉 김용희 송덕비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602-2 |
현 소재지 | 참봉 김용희 송덕비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602-2 |
현 소재지 | 참봉 김용희 송덕비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흥선리 |
성격 | 송덕비 |
양식 | 비좌개석 |
관련 인물 | 김용희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화양읍 토평리 ① : 110cm[높이]|38cm[너비]|화양읍 토평리 ② : 110cm[높이]|37cm[너비]|화양읍 토평리 ③ : 120cm[높이]|40cm[너비]|이서면 흥선리 : 137cm[높이]|36cm[너비] |
소유자 | 김해 김씨 문중 |
관리자 | 김해 김씨 문중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와 흥선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김용희 송덕비.
[개설]
김용희(金容禧)는 본관은 김해, 자는 사길(士吉), 호는 모계(慕溪)·대학범민(大學凡民)이다. 김일손의 14세손으로 화양읍 토평리에서 감역(監役) 김병두(金炳斗)의 5남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김용희는 만석의 재산을 바탕으로 활발한 숭조(崇祖) 사업과 구휼(救恤) 사업을 전개하였다. 숭조 사업으로는 자계 서원의 중건, 함안군 청계 서원 창건, 김해 수로왕릉 내 회노당 중건, 선조인 삼현[절효 김극일, 탁영 김일손, 삼족당 김대유]의 묘재와 묘각, 정자 등을 건립 보수 하였다.
이러한 김용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화양읍 토평리에 3기와 이서면 흥선리에 1기가 각기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건립 경위]
김용희는 범중엄(范仲淹)의 의전의택(義田義宅)을 본받아 의장(義庄)을 설치하여 가난에 시달리는 친인척과 이웃을 구휼하는 등 다양한 구휼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김용희가 베풀었던 은혜를 칭송하기 위하여 지역 주민들이 일제 강점기에 세운 송덕비들이다.
[위치]
이서면 토평리에 있는 송덕비 3기는 토평 2리 마을 회관 앞 길가에 세워져 있다. 50m 떨어진 길가에는 형인 김용복(金容復) 선정비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 흥선리에 있는 송덕비는 흥선리 둔직 마을 남쪽, 대곡천과 접한 길옆에 있다.
[형태]
1. 화양읍 토평리 ①
시멘트 바닥에 비신을 세워져 있고, 새로 조성한 팔작지붕의 개석을 얹은 비좌개석(碑座蓋石) 양식이다. 전면에는 비명(碑銘)과 찬시(讚詩)를, 후면에는 간지(干支)를 새 겨놓았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110cm, 넓이 38cm이다.
2. 화양읍 토평리 ②
시멘트 바닥에 비신을 세워져 있고, 비신 위에 팔작지붕의 개석을 얹은 비좌개석 양식이다. 전면에는 비명과 찬시를, 후면에는 간지와 건립 관련자 명단을 새겨 놓았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110cm, 넓이 37cm이다.
3. 화양읍 토평리 ③
시멘트 바닥에 비신을 세워져 있고, 비신 위에 팔작지붕의 개석을 얹은 비좌개석 양식이다. 전면에는 비명과 찬시를, 후면에는 간지와 건립 관련자 명단을 새겨 놓았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110cm, 넓이 39cm이다.
4. 이서면 흥선리
비좌는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며, 비신 위에 팔작지붕의 개석을 얹은 비좌개석 양식이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137cm, 넓이 36cm이다.
[금석문]
1. 화양읍 토평리 ①
(전면)
전 참봉 김용희 송덕비(前參奉金容禧頌德碑)// 후시박렴(厚施薄斂)/ 주궁휼빈(周窮恤貧)/ 왈인왈덕(曰仁曰德)/ 유구유신(愈久愈新)[재물을 두텁게 베푸시고 적게 거두어 들여/ 궁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두루 구휼하셨네./ 어질고 덕망 있으시다 하는 칭송이/ 세월이 오래 지날수록 더욱 새로우리라.]
(후면)
갑인십이월일립(甲寅十二月日立)
감역 이승준 박재순 김용범(監役 李承俊 朴在順 金容凡)
2. 화양읍 토평리 ②
(전면)
전 참봉 김용희 송덕비(前參奉金容禧頌德碑)// 추전감두(秋田減斗)/ 춘호연금(春戶捐金)/ 중구성비(衆口成碑)/ 명공지심(銘公之心)[가을밭에 수확한 곡물을 감해주시고/ 봄에는 집집이 돈을 베푸셨네./ 뭇사람들의 입이 비석이 되어/ 공의 마음을 새기었네.]
(후면)
갑인십일월일(甲寅十一月日)// 탁영김선생 십사세손 감역 조사랑 김공제이자(濯纓金先生 十四世孫 監役 趙仕郞 金公第二子)// 찬 박재영(撰朴在永)// 감 박종하 반달연 손진현 정감우 변영만 남경우(監 朴鍾廈 潘達淵 孫振賢 鄭鑑禹 卞榮晩 南慶祐)
3. 화양읍 토평리 ③
(전면)
참봉 김용희 송덕비(參奉金容禧頌德碑)// 적이희시(積而喜施)/ 위부위인(爲富爲仁)/ 인구승비(人口勝碑)/ 해능각민(奚能刻民)[재물을 쌓아 기쁘게 베푸시니/ 부유하시면서 인자하시네./ 사람들의 칭송이 비석보다 나으니/ 어찌 능히 비석에만 새겨두리오.]
(후면)
신유삼월일(辛酉三月日)// 감역 조응선 이종은 임규현 김학술(監役 曺應善 李鍾殷 林奎鉉 金鶴述)// 서 김덕칠(書 金德七)
4. 이서면 흥선리
(전면)
참봉 김용희 송덕비(參奉金容喜頌德碑)// 위부위인(爲富爲仁)/ 군자재인(君子哉人)/ 백세래덕(百歲來德)/ 여경무은(餘慶無垠)[부자이면서 어진 사람은/ 군자답도다 그 사람이여!/ 백세 동안 덕을 쌓으시니/ 넉넉한 경사는 끝이 없으리라.]
[현황]
토평 2리 마을 회관 앞에 있는 김용희 송덕비 3기는 길가에 별도의 비각(碑閣)과 안내판 없이 세워져 있으며, 비석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흥선리에 있는 김용희 송덕비 1기도 비각과 안내판 없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김용희 가문은 근대 청도 지역을 대표하는 대지주였다. 김용희 송덕비로 미루어 화양읍 토평리와 이서면에 상당히 많은 토지를 소유했던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