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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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陳羅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답918-1번지 일원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구군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7월 29일 - 진라리 유적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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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5월 30일 - 진라리 유적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완료 |
현 소장처 | 국립 경주 박물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
출토|발견지 | 진라리 마을 유적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답918-1번지 일원 |
성격 | 마제 석검 |
재질 | 흑색니암재 |
크기(높이,길이,너비) | 1호 고인돌 출토 간돌검 : 39.8㎝[전체 길이]|29.9㎝[검신 길이]|12.5㎝[손잡이 끝 너비]|10.8㎝[검코 너비]|4.0㎝[검신 너비]|3호 고인돌 출토 간돌검 : 66.7㎝[전체 길이]|48.9㎝[검신 길이]|24.1㎝[손잡이 끝 너비]|13.7㎝[검코 너비]|6.9㎝[검신 너비]|4호 고인돌 출토 간돌검 : 28.4㎝[전체 길이]|20.0㎝[검신 길이]|4.6㎝[손잡이 끝 너비]|5.9㎝[검코 너비]|5.4㎝[검신 너비] |
소유자 | 국립 경주 박물관 |
관리자 | 국립 경주 박물관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의 간돌검.
[개설]
간돌검[磨製 石劍]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청동기 시대의 독특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한국식 석검이라고도 한다. 진라리 유적의 간돌검은 모두 6점이다. 고인돌에 부장된 3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각이 출토되었으며, 고인돌 출토 간돌검은 유절병식[有節柄式], 유사 유절병식[類似 有節柄式], 유구병식[有溝柄式] 석검의 형태를 띤다. 현재 국립 경주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형태]
진라리 고인돌 1호에서 출토된 간돌검은 전체 길이 39.8㎝, 검신 길이 29.9㎝, 손잡이 길이 9.9㎝, 손잡이 끝 너비 12.5㎝, 검코 너비 10.8㎝, 검신 너비 4.0㎝, 봉부 길이 9.1㎝, 검신 두께 1.0㎝, 손잡이 마디 너비 3.8㎝, 손잡이 끝 두께 2.2㎝이다. 손잡이 중간에 두 줄의 마디가 있는 유절병식 석검이다. 손잡이는 검신의 1/3 크기이고 중간 요부(凹部) 양단에 간략화한 두 줄의 마디[융절]가 형성되어 있다. 요부는 0.44㎝로 형식만 갖추었다. 자루 끝은 둥글게 처리하였으며, 양끝으로 가면서 뾰족하게 마무리했다. 검신과 손잡이의 경계에 해당하는 검코[鐔部]는 상하가 대칭에 가까우며, 손잡이 길이보다도 길어 매우 과장된 형식이다. 검신은 검코 바로 위에서 완전히 수직 상태로 뻗어 올라 양인이 평행하며, 검신 길이 2/3를 조금 지나친 지점에서 삼각 형태의 봉부로 이어진다. 봉부 경계점에서 각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외곽선을 직선으로 처리하여 예리하다. 검신의 단면 형태는 마름모꼴이다.
진라리 고인돌 3호에서 출토된 간돌검은 전체 길이 66.7㎝, 검신 길이 48.9㎝, 손잡이 길이 17.8㎝, 손잡이 끝 너비 24.1㎝, 검코 너비 13.7㎝, 검신 너비 6.9㎝, 봉부 길이 18.0㎝, 검신 두께 1.7㎝, 손잡이 너비 5.6㎝, 요부 너비 3.6㎝, 요부 길이 1.2㎝, 손잡이 끝 두께 2.4㎝이다. 이단 병식 석검에 유절병의 마디 형식이 채용된 유사 유절병식 석검으로 일반 석검에 비해 상당히 크다. 손잡이도 검신의 크기에 비례하여 만들었는데, 중간에 슴베의 모양을 적절히 표현한 요부가 있고, 그 양단에는 미약하지만 도드라진 두 줄의 마디가 형성되어 있다. 자루 끝을 곧게 처리하였다. 검코는 상하 대칭에 가까우며, 가늘고 길게 과장되었는데, 한 쪽은 결실되고 없다. 검신은 검코 바로 위에서 서서히 폭을 좁혀 오르다가 검신 길이 2/3를 조금 못가서 날카로운 삼각 형태의 봉부로 자연스레 이행한다. 단면 형태는 검신의 경우 마름모꼴이고, 병부는 볼록 렌즈형이다.
진라리 고인돌 4호에서 출토된 간돌검은 전체 길이 28.4㎝, 검신 길이 20.0㎝, 손잡이 길이 8.4㎝, 손잡이 끝 너비 4.6㎝, 검코 너비 5.9㎝, 검신 너비 5.4㎝, 검신 두께 0.8㎝, 손잡이 마디 너비 3.2㎝, 손잡이 끝 두께 0.8㎝이다. 손잡이 중간의 양 측면에 살짝 홈을 내어 자루의 상하를 구분한 유구병식 석검이다. 유경식 석검을 I자 형의 나무자루에 꽂아 결합한 것 같은 모양새로 전형적인 이단병식 석검의 평면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심부는 손잡이 자루 상단이 일자로 끝나기 때문에 단순하다. 검신은 다소곳한 검코의 직상에서 살짝 들어갔다가 바로 둥근 호선을 그리면서 점차 좁혀 뾰족한 끝으로 이행하므로 봉부의 구분이 없고 전체적으로는 기다란 삼각형처럼 보인다. 검신과 병부 모두에 능각이 없으며, 단면은 볼록 렌즈형이다.
[특징]
석재는 기본적으로 흑색 이암제를 사용했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것들은 검신 형태가 모두 삼각형이고, 능각이 서지 않은 단면 볼록 렌즈형이지만, 고인돌의 부장품으로 들어간 것들은 4호 고인돌 출토품을 제외하면 모두 능각이 있다. 기본 형태에서도 1호와 3호 고인돌 출토품은 검신이 직인화한 것은 물론이고, 검코와 병단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날카롭게 처리되어 완전히 의기화(儀器化)된 석검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진라리 유적에서 간돌검은 주거지와 무덤의 양쪽에서 다 같이 출토하고 있다. 이는 당시의 사후 세계관과 풍습을 잘 나타내 주는 것으로, 간돌검이 위신재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망자와 함께 부족을 지키는 수호적 산물로 취급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고인돌에서 간돌검의 부장 위치를 보면, 청도 지역의 화리나 신당리 고인돌에서처럼 1호와 3호에서는 피장자의 왼쪽 허리와 대퇴부 사이로 공통점을 보이지만, 4호 출토품은 오른쪽 옆구리 부분에서 나왔다. 이 가운데 주거지 4호 출토품과 고인돌 4호 출토품은 검신 형태나 연마 방식 등이 거의 같은 시기 산물이어서 주거지와 무덤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데 좋은 대비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