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92 |
---|---|
한자 | 西北靑年團淸道郡團 |
이칭/별칭 | 서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1947년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조직되어 활동한 청년 단체.
[개설]
해방 이후 청도 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이북 출신 월남 청년으로 구성된 서북 청년단은 여타 다른 단체보다 지역민 전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설립 목적]
1946년 결성된 서북 청년단은 조국의 완전 자주 독립 전취(戰取), 균등 사회 건설, 세계 평화 공헌을 공식적인 강령으로 채택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좌익 세력 척결 및 대공 투쟁 전위대로서 활동하였다. 서북 청년단 청도 군단도 이러한 활동 목적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서북 청년단 청도 군단이 정식 발족한 연도는 자료의 부재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47년대에 창립된 것으로 보인다. 1948년 12월 19일에 대한 청년단으로 흡수 통합될 당시 서북 청년단 청도 군단 역시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서북 청년단 청도 군단은 청도 지역민에게는 경찰이나 군대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이들은 좌익 소탕을 전개하면서 좌익으로 의심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폭력과 살인을 거침없이 행사하였다. 특히 1949년 2월 25일 서북 청년단으로 창설된 호림 부대가 1949년부터 1950년 중반까지 청도 지역에 주둔하면서 좌익 세력 척결에 큰 역할을 하였다.
6·25 전쟁 발발 후에는 청도 지역 좌익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예비 검속이 시작될 때 좌익분자를 색출하여 강제 연행을 했다. 그 뒤 청년단 사무실을 비롯하여 청도 경찰서, 청도 국민학교, 소방 창고 등에 분산 구금한 뒤 군경들과 함께 청도 용각산 곰티재, 승학골로 이송하여 살해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현황]
서북 청년단 청도 군단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과 각 면에 사무실이 존재했을 만큼 광범위하게 조직되어 있었다. 조직 구성원을 보면 1차 임원진과 개편 이후의 2차 임원진으로 구분할 수 있다. 1차 임원진은 위원장 1대 송동호(宋東浩), 부위원장 한상수(韓相洙), 총무부장 김재호(金在浩), 원호과장(援護課長) 이복수(李福壽), 선전 부장 정종렬(貞宗烈)·송정일(宋正一)·김영일(金暎一), 조직 문화과장 송정일(宋正一), 정보부장 김춘택(金春澤)·박래영(朴來英)·강제헌(康濟憲), 훈련부장 오재영(吳在英)·조동근(趙東根), 훈련과장 박철(朴哲), 감찰부장 박영희(朴永熙)·황만석(黃萬石)·김중규(金重圭)·장태호(張泰浩), 감찰 정보과장 장병응(張秉應), 사감 강복헌(姜福憲)이다.
2차 임원진은 위원장 김석봉(金石峰), 총무부장 김영훈(金永勳), 조직부장 이복수, 선전부장 송정일·김영일, 훈련부장 조동근, 정보부장 박래영·강제헌, 부녀부장 최차순(崔次順), 사업부장 신성욱(申性旭)·이정민(李正敏)·박철, 감찰부장 황만석·김중규·장태호, 정보과장 최상화(崔尙和), 대원 45명으로 구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서북 청년단 청도 군단은 청도 지역 좌익 세력 제거에 많은 공을 세웠지만, 그 과정에서 표출된 지나친 폭력성은 민중과 좌익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