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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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道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윤제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새마을 운동 발상지로 알려진 신도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신기(新基)와 도곡(道谷)과 땅징이[楮亭], 동바우를 합해서 신도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신리와 도곡과 땅징이, 동바우를 합해서 신도동이 되었다. 도곡은 길골이라는 뜻으로 옛날부터 한재로 통하는 길옆에 있던 마을이다. 신기는 새로 형성된 마을을 말한다. 땅징이는 한자로는 저정(楮亭)이라고 표기하지만 당나무 정자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동바우는 마을 끝 부분에 큰 바위가 있어서 동암(東巖)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도군 하남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신도동이라 해서 대성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40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명하면서 청도면 신도동이 되었고, 1947년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하면서 청도읍 신도동이 되었다. 1988년 신도동에서 신도리로 개명하였다.
1969년 늦여름 집중호우로 방천길이 모두 떠내려갔을 때 주민들은 비가 더 오면 아랫마을이 비 피해를 입을 것 같아 모두 나와 방천(防川)을 하고 방천과 아울러 길을 만들고 있었다. 마침 삼남 지방에 수해(水害) 복구 격려차 지나가던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국민의 마음이 한 곳에 모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착안해낸 것이 ‘농촌 잘살기 운동’이었다. 다음해 지방 장관 회의에서 ‘농촌 잘 살기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면서 그 이름을 ‘새마을 운동’이라 하면 어떻겠냐고 한 것이 새마을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자연 환경]
신도리는 청도읍내에서 상리가 있는 한재로 넘어가는 좁고 긴 골짜기이다. 서·남·북이 높은 산으로 이루어진 이 지역은 마사토로 형성된 지질로 인해서 일찍부터 사과 농사를 지어왔다. 동쪽으로 트인 마을 앞으로는 청도천이 가로 막혀 있고, 경부선 철도와 국도 25호선이 청도천을 따라 지나고 있어 경작지는 대부분 산비탈 밭을 이용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충적토로 이루어진 신도리는 넓은 밤 밭을 가지고 있어 하율림(下栗林)으로 불렸고, 땅징이는 조선 전 시기를 거쳐 오는 동안 밤 밭으로,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지리지(地理誌)마다 언급되어 있다. 하율림이란 상율림(上栗林)의 대칭으로 상율림은 화양읍 합천리에 있다. 용각산 줄기가 유천으로 내려가다 멈추고 오산(鰲山)[남산] 줄기가 유호리로 내려가다 옆으로 퍼진 중간에 좁은 협곡을 만들고 있으며 가운데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이 평지가 바로 하율림이며 신도리를 안고 있는 형국이 된다. 땅징이 끝 부분에 있는 동바우는 청도천의 가장 좁은 목에 있는데 도로 확장을 하면서 많은 부분이 잘려나갔으나 저승차사가 삼천갑자 동방삭을 잡아 간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4.32㎢이고, 총 123가구에 324명[남자 164명, 여자 160명]의 주민이 살고 살고 있다. 동쪽은 청도읍 거연리·유호리, 서쪽은 청도읍 상리, 남쪽은 청도읍 평양리·초현리, 북쪽은 청도읍 원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 신도 1리와 신도 2리가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신기와 도곡, 땅징이, 동바우 등이 있다.
도곡 쪽에는 마사 흙이 물 빠짐도 좋고 일조량도 좋아 사과 농사가 각광을 받고 있다. 경부선 철도가 지나는 신거역이 위치하고 있으며, 국도 25호선이 지나고 있다.
새마을 발상지 기념관과 새마을의 변천사를 재현해 놓고 있는 신도리는 2000년 행정 자치부[현 안전 행정부] 지정 정보화 마을로 지정되었으며, 마을 입구에는 2011년 조성된 새마을 발상지 공원이 있다.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관은 사업비 52억 원으로 전시관, 새마을 광장, 피크닉장, 야외 전시 마당, 주차장 등으로 구성되어 2008년 7월에 개관하였다. 신도리는 이 외에 다양한 체험과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