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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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男子-相-女人 |
이칭/별칭 | 복 많은 며느리,복 많은 백정 딸,쫓겨난 여인 발복 설화,복 진 며느리,복 많은 대감 며느리가 두 남자를 살리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
집필자 | 강영순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서 전해지는 두꺼비 상을 가진 여인 이야기.
[개설]
「두 남자를 살린 두꺼비 상의 여인」은 어느 대감이 거지 관상을 가진 아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 두꺼비 상을 지닌 백정 딸과 혼인시킨 이야기이다. 대감이 죽은 후 내쫓긴 백정의 딸은 숯구이 총각과 결혼하여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거지가 된 첫 남편이 찾아오자 다시 따라가서 잘 살았다.
[채록/수집 상황]
「두 남자를 살린 두꺼비 상의 여인」은 단국 대학교 교수 강영순과 구비 문학 조사반이 2010년 2월 3일 전군자[74세, 여,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게 채록하여 『천안의 구비 설화』-직산읍 편에 수록하였다.
[내용]
옛날 어느 대감댁에 아들이 하나 있었다. 대감이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관상을 보니 부모 사후 망할 관상이었다. 두꺼비 상을 가진 여인을 아내로 얻어 주면 부모가 죽은 후에도 잘산다는 말에 대감은 사방팔방으로 종들을 보내 두꺼비 상을 가진 여인을 찾았다. 종들이 두꺼비 상 여인을 찾으러 다니는 중에 어느 고을을 가다가 물 긷는 처자를 발견하고 보니, 백정 집 딸이었다. 종들이 돌아와 대감에게 고하니 대감은 아들에게는 백정 딸임을 숨기고 혼인을 시키기로 하였다.
백정 딸과 대감 아들이 혼인을 하였는데, 첫날밤에 신부가 잠꼬대를 하면서 소 잡을 때 소 모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대감 아들이 깨워 자초지종을 캐묻자 신부가 백정 딸임을 고백하였다. 그 사실을 안 대감 아들은 대감이 죽은 후에 신부를 내쫓았다.
쫓겨난 백정 딸은 친정으로 돌아갈 수는 없고 길을 가다 만나는 첫 번째 남자와 살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어느 산을 가다가 지게를 지고 오는 남자를 만나 따라 갔더니 숯을 굽는 총각이었다. 백정 딸은 사정을 이야기하고 숯구이 총각과 살았다. 숯구이 총각은 백정 딸과 결혼한 뒤 무슨 일이든 잘되어 자식도 낳고 큰 부자가 되었다.
백정 딸은 자신이 아니면 망한다는 첫 남편 생각이 나서 거지 잔치를 열었다. 얼마 후에 소문을 듣고 첫 남편이 나타났다. 백정 딸은 종들을 시켜 첫 남편을 방에 모셔다 놓고 씻기고 옷도 갈아입혔다. 그러고는 저녁에 자신이 내쫓겼던 부인이라고 말하니 첫 남편이 그제야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울었다. 백정 딸은 잘사는 두 번째 남편을 놓아두고, 못 사는 첫 남편을 살리기 위해 첫 남편을 따라가서 잘 살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두 남자를 살린 두꺼비 상의 여인」은 쫓겨난 여인의 발복 설화 유형이다. 복 많은 여인이 남편과 가문을 일으키고 부유하게 산다는 내용이다. 흔히 여인의 신분은 ‘백정 딸’, ‘소금 장수 딸’ 등으로 설정된다. 「복 많은 며느리 이야기」, 「복 많은 대감 며느리가 두 남편을 살리다」 등의 제목으로도 전승된다. 쫓겨나서 숯구이 총각을 만나 부자가 되어 잘살았다는 모티프는 「뉘 복에 사느냐」와 동일하다. 다만, 「뉘 복에 사느냐」는 쫓겨난 셋째 딸이 후에 거지가 된 부모를 다시 만나 잘살게 해 주었다는 결말이고, 「두 남자를 살린 두꺼비 상의 여인」은 쫓아낸 첫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 잘살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한 가문에서 여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인의 ‘타고난 복’으로 설명하려는 운명론적 관점을 나타낸 설화 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