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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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華慶 |
이칭/별칭 | 유천(柳泉)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성희 |
[정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개설]
김화경(金華慶)[1922~1979]의 호는 유천(柳泉)이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질을 보여 15세에 서울의 조선 미술원 연구생이 되었다가 김은호(金殷鎬)의 화숙에서 수학하였다. 스승의 채색화 기법에 따른 인물화로 1940년대부터 조선 미술 전람회에 거듭 입선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과 미술 협회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지도했으며, 시골의 초가집 등 향토적인 소재를 수묵과 황토색조로 그렸다.
천안을 비롯한 충청 지역 한국화 1세대는 고암(顧菴) 이응로(李應魯)[1904~1989]·심원(心園) 조중현(趙重顯)[1917~1982]을 들 수 있다. 여기에 김화경과 한유동(韓維東)도 같은 시기 활동하면서 한국화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을 했다. 특히 김화경은 김은호에게 채색 인물화를 배워 화단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광복 이후부터 1960년까지 천안에서 중·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 참가하는 등 괄목할 만한 활동을 보이면서 천안 미술계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활동 사항]
1942년 일본 도쿄 데이코쿠 미술 학교[東京帝國美術學校]에 입학해 1944년 졸업했다.
1960년까지 천안에서 활동하다 이후 활동 무대를 서울로 옮겨 중견 한국화가 단체인 백양회의 동인전에 참여했다. 1961년~1963년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의 초대 작가와 심사 위원·미술 협회 이사 및 동양화 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수도 여자 사범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73년 ‘한국 현역 화가 100인전’과 1976년 ‘한국 현대 동양화 대전’에 출품했고 수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칸느 회화제·말레이시아전 등 국제 초대전에도 참가했다.
[저술 및 작품]
초기에는 일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1960년대부터는 자기 개성의 양식주의를 창안하여 겨울의 초라한 오두막집과 가난한 생활 분위기 등을 일관된 소재로 삼아 반복적으로 표현했다.
속도감 있는 필력으로 초가지붕의 과장된 형태, 주인을 기다리는 아낙네, 함박눈이 퍼붓는 분위기에서 뛰노는 삽살개 등 장식적이면서 서민적인 훈훈한 정감을 나타내는 작품을 그렸다. 특히 초가집과 설경 등 향토적인 소재를 독특한 수묵 필치와 채색 기법으로 표출함으로써 한국 화단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작품으로 「원두막집」, 「학을 지키는 마을」, 「해와 초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