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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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頎俊 |
이칭/별칭 | 중촌(中村)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선명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중촌(中村)이다. 이효범(李孝範)의 손자이다.
[활동 사항]
이기준(李頎俊)은 어려서부터 예의를 중시하고 효성을 다하여 부모의 뜻을 받들었다.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대변을 맛보고 제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였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초상에서 장례까지 한결 같이 예법에 따랐다. 3년 동안 움막에서 시묘 살이를 하며 죽만 먹고 슬퍼한 나머지 야위어 뼈만 남았다고 한다.
임금과 왕비의 제사에는 상복을 입고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남의 초상을 들으면 술과 고기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기준의 효성이 널리 알려져 정랑(正郞)에 추증되었고, 숙종 때 정려문을 세워 표창하였다. 문인이었던 진사 이득하(李得夏)가 행장(行狀)을 지었다.
[상훈과 추모]
숙종 때 정려문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