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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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忠佐 |
이칭/별칭 | 경직(敬直)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종식 |
정려문 | 서충필·서충좌 정려문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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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남양(南陽)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직(敬直)이다. 적순부위(迪順副尉) 서혼(徐混)의 아들이며, 효자 서충필(徐忠弼)의 동생이다.
[활동 사항]
서충좌(徐忠佐)는 아이 때부터 성품이 순정(純正)하여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열두 살에 할머니 상을 당하여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아버지를 따라 시묘하면서 교대로 제사를 받들었고 탈상한 뒤에도 게으름이 없었다.
1571년(선조 4) 3월에 전염병이 극심하였는데, 어머니 원씨가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자 서충좌는 아버지도 전염될까 염려하여 형 서충필에게 아버지를 업고 피하도록 권하고 홀로 어머니 곁에서 밤낮으로 간호하였다. 서충좌도 전염되어 괴로웠지만 어머니가 염려되어 웃는 얼굴로 위로하였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기절하여 숨을 쉬지 않자 서충좌는 급히 몸을 일으키고 기어 나와 칼로 왼손 무명지를 잘라 입에 피를 흘려 넣으며 통곡하였다. 그러고는 잘린 손가락을 불에 태워 약에 타서 마시게 하니 차도가 있어서 어머니가 깨어났다.
1574년(선조 7) 유향소에서는 서충좌를 효자로 천거하였고, 40명의 품관(品官)과 50명의 교생(校生)이 장계를 올렸으며, 군수 최연(崔淵)이 감사(監司)에게 보고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에 서충필과 서충좌의 효행을 기리는 정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