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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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達永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내수 |
출생 시기/일시 | 1873년 6월 15일 - 성달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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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7년 - 성달영 대한 광복회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성달영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 처단에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성달영 대한 광복회 조직이 발각되어 일경에 체포 |
몰년 시기/일시 | 1933년 1월 30일 - 성달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성달영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 광복회 단원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성달영(成達永)[1873~1933]은 천안 성정동 출신으로, 1917년 대한 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였다. 천안·아산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친일 면장 등을 처단하였고, 군자금 모금과 독립군 육성에 힘쓰다가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성달영은 민종식(閔宗植) 의진에 종군하여 홍주성 전투에 참가하였다. 1917년에는 유창순(庾昌淳)의 권유로 대한 광복회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 및 친일 부호 처단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대한 광복회는 1915년 풍기 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 국권 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이 통합하여 결성된 혁명 단체이다. 대한 광복회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확보한 혁명 기지를 거점으로 적시에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때 행동 지침은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강령이었고, 혁명 계획은 군자금 조달·독립군 및 혁명군의 기지 건설·조선총독 처단과 친일 부호 처단 등이었다.
성달영은 군자금 모금 활동을 수행하였을 뿐 아니라, 1918년 장두환(張斗煥)·김경태(金敬泰)·임봉주(林鳳柱) 등이 친일 행위를 자행하던 아산군 도고 면장(道高面長) 박용하(朴容夏)를 처단할 때 자신의 집을 논의 장소로 제공하여 거사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 일로 대한 광복회의 조직이 발각되어, 성달영은 191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성달영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