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84 |
---|---|
한자 | 申箕善 |
이칭/별칭 | 언여(言汝),양원(陽園),노봉(蘆峰),문헌(文獻)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내수 |
[정의]
개항기 천안에 우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언여(言汝), 호는 양원(陽園)·노봉(蘆峰),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신희조(申羲朝)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신기선(申箕善)[1851~1909]은 1877년 대과 별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 부정자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878년 사간원 정언, 1879년 홍문관 부교리, 1881년 세자시강원 문학 등을 역임하였다. 1882년 통리기무아문 주사를 거쳐, 다시 시강원 문학이 되어 기무처(機務處)에 나아가 수시로 영의정과 국정을 의논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때 개화당 내각에 이조 판서 겸 홍문관 제학으로 참여한 뒤 1886년 전라도 여도(呂島)에 유배되었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풀려나 호조 참판을 거쳐 김홍집(金弘集) 내각의 공무 대신이 되었다. 1895년 군부 대신에 임명되면서 육군부장(陸軍副將)이 되었고, 중추원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896년 의병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가 되어 지방에 내려가 선유 활동을 하였다. 이때 천안의 목천 지역을 지나면서 당시 제천에 머물러 있던 의병장 이범직(李範稷)을 만나 의병 해산을 권고하였다.
1898년 법부 대신, 1899년 학부 대신을 거쳐 1900년에 궁내부 특진관·중추원 의장, 1901년에 비서원 경(秘書院卿)·법부 대신·의정부 찬정(議政府贊政), 1902년에 군부 대신, 1903년 철도원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1904년에는 보안회 회장이 되어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 일경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신기선은 의정부 참정을 거쳐 1905년 함경도 관찰사, 1906년 홍문관 학사, 1907년 장례원 경(掌禮院卿)·수학원장(修學院長) 등을 지냈다. 1907년 민병석(閔丙奭)·이용직(李容稙) 등과 함께 대동학회(大東學會)를 창립하여 회장에 선임되었다. 1909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양원집(陽園集)』, 『유학경위(儒學經緯)』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