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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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種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내수 |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의병·독립운동가.
[개설]
이종칠(李種七)[1864~?]은 충청남도 목천군 갈전면 상석항리를 본적으로 하나 그 외 가계나 학력 등은 알 수 없다. 이종칠은 의병 부대에 가담하여 일본군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활동 사항]
이종칠은 1909년 음력 8월 충북 청주에서 한봉서(韓鳳瑞) 의진에 가담하였다. 이후 이종칠은 같은 해 음력 12월 이정구(李正九) 등과 함께 군자금 모급에 나설 것을 계획하였다. 이정구는 1909년 음력 4월부터 충북 괴산군 서면(西面) 사치(沙峙)에서 일본군 수비대 2명을 사살하고 무기를 탈취하였으며, 음력 8월 15일에는 청주 북강내이면(北江內二面) 화죽리(花竹里)에서 헌병 분견소의 밀정으로 활동하던 박래천(朴來舛)을 처단하는 등 애국 투쟁을 전개하다 11월 8일에 한봉서 의병장과 결별하고 잠복 중이던 인물이었다.
이종칠은 이정구와 1909년 음력 12월 16일 충청북도 청주군 북강외이면(北江外二面) 양청리, 충청남도 목천군 갈전면 소근리·삼성리·봉암리 등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이종칠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종칠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