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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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東寧先生生家址 |
이칭/별칭 | 이동녕,생가지,안채,사랑채,대문간채,이동녕 기념관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79-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진호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9년 4월 20일 - 이동녕선생생가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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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이동녕선생생가지 충청남도 기념물 재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5년 12월 - 이동녕선생생가지 보수 및 정비 |
현 소재지 | 이동녕선생생가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79-2 |
성격 | 기념 유적지|생가터 |
양식 | ‘ㅁ’자 형 |
관련 인물 | 이동녕 |
면적 | 2,608㎡[부지]|144.82㎡[건물 면적]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에 있는 독립 운동가 이동녕의 생가터.
[개설]
이동녕[1869~1940]은 천안 목천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석오(石吾), 자는 봉소(鳳所)이다. 1940년 72세 때 급성 폐렴으로 중국 쓰촨성 기강에서 순국할 때까지 독립 운동에 전 생애를 바쳤다. 1962년 건국 공로 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이동녕선생생가지는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이동녕선생생가지(李東寧先生生家址)는 2005년 12월 보수 및 정비가 완료되고, 생가 복원 사업이 이루어졌다. 더불어 우물, 포토 존[이동녕 선생 좌상] 등 구조물이 구성되었고, 생가에는 안방, 사랑채 등에 옛 가구 및 인물 모형이 전시되었다.
[위치]
[형태]
이동녕선생생가지는 부지 2,608㎡, 건물 면적 144.82㎡으로,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대문간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ㄷ’자 형을 이루고 있다. ㄱ자형 안채는 팔작지붕인데 3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한 칸씩 있다. 안채의 좌우로 3칸씩 내어 방과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쪽을 향하고 있는 대문간채는 모두 5칸인데,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 칸씩 방을 두었다. 사랑채는 많이 변형되어 원형을 알 수 없다. 생가 밖 오른쪽에는 우물과 이동녕 선생의 좌상이 있다.
[현황]
2010년 2월 23일 생가지 주변에 석오 이동녕 기념관이 개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