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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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宗敎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집필자 | 박성섭 |
[정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이 가진 신앙 체계.
[불교]
천안은 백제에 속했던 지역으로 384년(침류왕 원년) 동진의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수용한 후 백제 땅에서 불교를 공인하고 널리 사찰을 창건하였다. 천안에도 광덕면 광덕산에 광덕사가 창건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유려왕사, 성불사, 만일사, 천흥사, 홍경사, 마점사 등 많은 사찰이 설립되었다. 특히 고려 태조 왕건이 유숙했다는 유려왕사나 왕건이 주마(駐馬)했다는 마점사, 성불사 등 왕건과 관련된 사찰이 많다.
조선 시대에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18~19세기에 이르면 유려왕사, 개천사를 포함한 많은 사찰들이 폐사되었다.
[유교]
유학의 깊이가 더해간 17세기에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게 된 후 중앙 정계와 학문 세계를 호서 유학이 주도하였다. 호서 유학은 이기 일원론과 주기론을 바탕으로 현실 참여적인 성격을 가지며, 다양한 학풍이 공존하였다. 천안 지역 역시 대개 충청우도에 속해 있었지만, 경기도와 충청좌도의 중심지인 청주에 접해 있어 이 지역의 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천안 지역은 일찍부터 동인과 기호 남인 계열이 자리 잡았다. 천안 지역은 충청우도의 다른 지역보다 다양한 유학의 학풍이 존재했고 이는 북학파(北學派) 실학의 선구자인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을 배출하는 토대가 되었다.
[천주교]
충청남도에서 천주교가 처음 전해진 곳은 1784년 이후 삽교천 일대의 내포 지방(內浦 地方)이었다. 천안 지역은 이보다 늦은 1800년대 초에 천주교가 전파되었는데 내포 지방과 다른 지역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성거산 일대로 모여들어 교우촌(敎友村)이 형성되면서부터였다.
박해를 피해 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발달하다 보니 풍세와 광덕 지역 등 천안의 외곽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확산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서도 신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천안 외곽 지역에 살고 있었으나 1939년 천안시 동남구 성황동에 천안 성당[현재의 오룡동 성당] 설립을 시작으로 도심 지역으로 천주교가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지속적으로 교세가 확장되어 2012년 현재 천안 지역에는 시내와 외곽에 16개의 성당이 있다.
[개신교]
천안 지역의 개신교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전파되었다. 특히 감리교는 천안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1898년 스웨러 선교사가 파송 되어 공주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천안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감리교 선교사들은 천안의 목천, 병천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여, 지령리 교회가 설립되었다. 1911년 천안 제인 감리교회가 설립되고, 1914년에 중앙 감리교회 등이 설립되면서 교세를 확장해나갔다. 감리교 뿐만 아니라 1933년에 성결 교회, 구세군도 1934년 천안 지역에 전파되었다. 천안 지역에 전파된 개신교는 선교 활동뿐만 아니라 천안 지역에서 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 사업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신종교]
천안 지역에는 대순 진리회, 신천지교, 여호와의 증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통일 교회 등의 여러 신종교가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