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A020101 |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정지 |
“한국전쟁은 시장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어요. 서울을 수복하고 나서 부천에 피난민이 많이 눌러앉아서 판잣집 하꼬방하고 노점들이 많이 형성되었어요.”
부천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재래시장이 깡시장과 자유시장이다. 시장의 형성 시기는 정확치 않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50~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일제시기 부천역 일대가 개발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인구가 늘었고 노점들이 들어서며 골목시장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 시기 부천시장은 일명 깡시장으로 불리며 그 규모를 점차 확대했다. 깡시장의 ‘깡’은 ‘그것만으로 이루어진’을 뜻한다. 이윤 없이 혹은 적은 이윤만을 남기는 시장으로 상품의 가격이 가장 싼 시장인 셈이다. 6·25 전쟁 직후 피난민들의 유입과 자연적인 인구증가에 따라서 상행위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70년대에 들어서 시장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청과물 도매시장이 생기며 인천은 물론 김포, 검단, 영등포 등지에서도 이곳으로 장을 보러 올 정도였다고 한다. 부천 깡시장은 농축수산물을 비롯해 각종 잡화 등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의 대부분을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였다. 부천 일대에선 가장 먼저 형성됐고 그 규모도 여느 시장보다 크다.
부천은 일제시기부터 군부시장을 거치지 않고 신선하고 좋은 닭과 계란을 격일로 경성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소와 닭을 제외한 다른 품목들은 소규모 노점을 형성하여 거래되었는데 주요 품목은 포목류, 야채, 약품, 방물류 등이었으며 상업 활동은 극히 미약하고 영세하였다. 당시 소사극장 부근에는 노점 형태로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업종은 주로 조선인이 영업하였으며 비교적 큰 규모로 식료품 장사를 하던 일본인도 있었다고 한다.
주요 상회로는 문영기 포목점, 경인약방[노영일, 노병탁 운영], 부천약방[정명택 운영], 복장잡화[김진태 운영], 중앙식당[오복환 운영], 이화포목 등이 있었는데, 특히 노영일 씨가 운영하던 경인약방은 경인약국으로 탈바꿈하여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부천의 상업규모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는 없으나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7년 이후부터 전시통제 경제체제로 변모, 일제로부터 배급을 받았다고 한다. 해방이 되자 이들 상점은 적산의 형태로 상인들에게 10~20평씩 무상으로 나누어지거나, 원래의 상점주들이 자기 상점을 다시 획득하는 형태로 상행위가 시작되었다. 이때에는 소사극장 부근에서 그레이스쇼핑센터 부근으로 상권이 조금 이동하기는 했으나 상인 및 규모의 영세성은 일제강점기와 비슷하였다.
“한국전쟁은 시장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어요. 서울을 수복하고 나서 부천에 피난민이 많이 눌러앉았는데 먹고 살려다 보니까 그레이스쇼핑센터 뒤편으로 판잣집 하꼬방(판자촌)하고 노점들이 많이 형성되었어요.”(조길원, 부천자유시장상인회 이사장)
이후 도시가 커지자, 상인들은 재빨리 과거의 재래시장 개념에서 청소년을 위한 옷가게, 패스트푸드점, 게임방 등의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을 시도했고, 결국 기존의 시장터는 새로운 이들에게 넘겨주고 그 주변으로 옮겨가 도리어 시장의 범위가 더 넓어지며 지금과 같은 광범위한 지역으로 시장이 분포하게 됐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