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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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方言 |
영어의미역 | Dialect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집필자 | 박덕유 |
[정의]
경기도 부천시에서 사용하는 특유한 단어·어휘나 언어적 현상.
[개설]
언어학에서 방언은 한 언어가 외적인 변화와 내적인 변화에 의하여 지역적, 계층적으로 분화된 언어를 총칭하는 말이다. 전자를 지역방언, 후자를 사회방언 또는 계층방언이라고 하는데, 흔히 좁은 의미로 방언이라고 할 경우에는 지역방언을 가리킨다. 부천의 방언은 중부방언으로 경기도·충청북도·충청남도·강원도·황해도 대부분 지역이 중부방언에 해당되며, 경기방언 또는 중선방언(中鮮方言)이라고도 한다.
부천 지역은 충청도, 강원도와 함께 중부방언권에 속하면서도 다른 수도권 지역과 마찬가지로 서울에 인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서 방언의 색채가 적은 편이었다. 특히 산업화와 도시 개발 이후 급격한 인구 이동에 따라 부천 지역만의 고유 언어는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현재 방언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것은 지명 정도이다.
[부천의 지명과 방언]
부천 사람들은 소사를 소새라고 불렀다. 소새는 크게 윗소새와 아랫소새로 구분되는데 윗소새는 예전 소사1리로, 소사본1동 2통에 해당되고, 아랫소새[예전 소사2리]는 예전 소사3리 삼거리에서 쌍느티나무 부근으로 소사본2동 3·4·5통에 해당된다. 또한 소사동 일대를 조리터라고도 부른다.
부천의 지질학적으로 보아 크게 두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성주산 자락의 소사동을 중심으로 모래나 쇠가 나는 지역이다. 이 지역들은 배수가 잘 되어 ‘조리터’라 불리기도 하며 구릉과 야산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배수가 잘 되는 땅에서 잘 자라는 복숭아 재배에 적합하였다. 이 지역의 지명이 옥산과 소사인 것을 보아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중동들을 중심으로 한 내[川]가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들은 배수가 잘 되지 않고 들로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의 지명이 석천(石川)[일명 돌내]인 사실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첫째 경우에 해당하는 소사동은 소사천을 끼고 있어서인지 조리에서 물이 빠지듯 잘 고이지 않은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사[소새]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며 이는 평택시의 소사도 지질 면에서는 이곳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베르네는 멀미 춘의동 망골이 그 발원지이다. 그곳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작미골을 거쳐 바람모퉁이에서 베르네 본류와 합류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물길이 커진 베르네는 성곡동으로 흘러가면서 여월 가마골, 효경골, 안골, 봉골에서 흘러 들어온 물이 재차 합류를 한다. 그렇게 해서 물길이 거세진 베르네는 까치울 능미 아래를 지나 멧마루 가리꿀을 거치고 거칠개를 통과해 오정들로 빠져나간다.
이처럼 베르네는 멀미, 봉배산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모여 만든 내이다. 베르네의 명칭은 베리내·비린내·비리내 등으로 불린다. 그런데 내는 하천을 말하고 베리·비린·비리는 어원적으로 벼랑을 의미한다. 원래 벼랑·낭떠러지를 베락·벼락·벼루·별·벼루·비루·베리·비리 등으로 쓰였다. 이렇게 그 단어가 많은 것은 벼랑이 각 지방에 맞는 방언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부천시 심곡3동에 위치한 골짜기인 먹적골은 그 원형이 막잣골이다. 앞 글자 ‘막’은 ‘막히다’의 뜻이고, ‘잣’은 ‘산’을 가리킨다. ‘자·재’가 산으로 쓰여 ‘막힌 산의 골’이란 의미에서 ‘막잣골’이 막작골이 되고, 이것이 다시 먹적골이 된 것이다. 즉, ‘산으로 빙 둘러 막힌 마을’이라는 뜻의 먹적골은 실제로 마을 뒤가 성주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에 의해 빙 둘러 막혀 있었다.
이외에도 성주산 능선이 마을 뒤로 뻗어 내려가 마을 모양이 사람의 ‘목젖’ 모양의 형상을 이루어 ‘목젖골’이라 부르다가 후에 목적골로, 그리고 다시 먹적골로 불렀다고 전하기도 한다. 또한, “겉절리[현 춘의동]에 가서 (곡식을) 거두어서 소사에 가서 소를 사서 장말[현 중동] 가서 잡아서 조마루[현 원미동]에 가서 졸여서 진말[현 심곡2동]에 가서 지져서 농장(현 중동에 있던 일본인 농장)에서 나누어 먹적골에 가서 먹었다”라는 얘기가 전하고 있다.
또한, 부천시 도당에서 거칠개를 갈 때 이용하던 고개를 거칠고개라고 한다. 거칠개는 작은 포구이므로 이에서 거칠고개가 유래한 것으로 본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것친고개’로 표현해 놓고 있다. 이 것친고개가 거칠고개로 바뀐 것이다. 거칠고개는 능미 옆구리를 뚫어 길을 만든 것으로, ‘것친’은 겹친에서 나온 말로 두 고개가 겹쳐져 있음을 나타낸 부천 지역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