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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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晉州金氏 |
영어공식명칭 | Jinju Kimssi|Jinju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희 |
본관 | 진주 - 경상남도 진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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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진주 김씨 입향지 - 전라북도 부안군 |
세거|집성지 | 진주 김씨 세거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
성씨 시조 | 김추(金錘) |
입향 시조 | 김경서(金景瑞)|김세정(金世貞) |
[정의]
김추를 시조로 하고, 김경서·김세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세거 성씨.
[연원]
진주 김씨(晉州金氏)는 관향은 같으면서 뿌리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하나는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를 시조로 하는 신라 김씨계이다. 또 한 계통은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3세손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둘째 아들 김원술(金元述)로, 부모에게 용서받지 못한 것을 한탄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진주에 정착한 후 그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본관을 진주로 삼은 계통이 있다.
[입향 경위]
진주 김씨는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790년대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誌)』와 1887년(고종 24) 편찬된 『부안지(扶安誌)』[정해지]에도 실려 있지 않다. 진주 김씨는 조선 시대 부안 지역의 토호로 영월 신씨(寧越辛氏)와 함께 노휴재(老休齋)의 주인이었는데도 조선 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문헌에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은 의아하다.
진주 김씨의 부안 입향 경위는 두 가닥으로 알려져 있다. 진주 김씨의 실질적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진양 부원군(晋陽府院君) 김무진(金茂珍)의 큰아들 김퇴(金堆)는 옥과 현감을 지냈고 호가 반은(盤隱)이어서 그 후손들을 반은공파라고 불렀다. 김퇴의 증손자인 김중국(金重國)의 6세손 호조 참의 송은(松隱) 김경서(金景瑞)가 부안으로 들어와 입향조가 되었다.
또 한 가닥은 김무진의 다른 아들인 김태(金台)의 후손들로, 김서룡(金瑞龍)과 김시흥(金始興) 형제가 세종(世宗) 때 충청도 비인군 이방면 산차천[현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에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면서 비인파로 불렸다. 이후 김시흥의 4세손 김세정(金世貞)이 부안으로 이거하며 부안파가 되었다.
김양선(金養善)은 1825년(순조 2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만년에 동진면 내기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독립운동가로 부안읍 동중리 출신 김환(金桓)이 있으며, 지역 문화에 많은 족적을 남긴 인물로 부안읍 선은리 출신의 소설가 김태수(金泰秀)[김민성의 아버지]가 있다.
[현황]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부안군에는 진주 김씨 231명이 살고 있다. 1991년 발간된 『부안군지』에는 부안읍, 주산면, 동진면, 행안면, 보안면, 변산면, 백산면, 하서면, 줄포면 등지에 진주 김씨가 살고 있다.
[관련 유적]
부안군청 옆인 부안군 부안읍 서림공원길 4[동중리 302-1번지]에 조선 시대 진주 김씨와 영월 신씨 등이 함께 지은 노휴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