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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6·10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남영희(南榮熙)[1905~1989]는 1926년 중앙고등보통학교[현재 중앙고등학교] 재학 시절 6·10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1927년 수원고등농림학교[현재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하여 비밀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일제에 발각되었다. 광복 후 농림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건국대학교 교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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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민병길(閔丙吉)[1884~1942]은 중국 난징[南京]으로 망명하여 한국혁명당 등 각 정당에 참여하였다.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사망 때까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민병길의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소운(蘇雲), 이명은 민경수(閔庚壽)·이소운(李蘇雲)·이군송(李君宋)이다. 충청남도 아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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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응구(朴應九)[1921~1989]는 1939년 일본 규슈[九州] 나가사키현[長崎縣]에 있는 이사하야농학교[諫早農學校] 재학 중 비밀결사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비밀결사가 일제에 의해 탐지되어 조선으로 송환되었고, 1943년 5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대구형무소에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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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박정양은 1895년 1월 12일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현 배방읍 장재리]에서 태어났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대한통의부 국내 지부에서 활동하면서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 중 일제에 체포된 후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35년 사망하였다. 만주에 설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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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방창근은 1885년 11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신인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온양장에서 대한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태형을 받았으며 결의단(決意團)을 조직하고 비서장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963년 6월 6일 사망하였다. 방창근은 1919년 3월 14일 온양장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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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성낙응(成樂鷹)[1914~2001]은 보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상환 등과 비밀결사 ‘반제국주의동맹반’을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성낙응은 1932년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조상환, 유동태, 서승석, 신대성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반제국주의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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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동산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윤용주(尹龍周)[1884~1949]의 아호는 현천(玄天) 또는 성첨(聖瞻), 이명은 이민하(李敏河)이다. 일찍이 대한독립의군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경성[서울]에 올라가 전협 등이 조직한 대동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대동단 활동을 통해 단원 및 자금 모집에 진력하였다. 윤용주는 일찍이 한학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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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감리교 목사. 이규갑(李奎甲)[1887~1970]은 1919년 인천 만국공원에서 개최된 국민대회에 13도 대표로 참석 후 상해로 망명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충청도의원을 맡았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목회자로 선교 활동과 교육사업을 하였으며, 1929년 신간회 활동에 참여한 이후 목회 활동을 계속했다. 해방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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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이규풍(李奎豊)[1865~1932]은 구한말 조정에서 관직에 있다가 을사늑약 후 낙향하였다. 이듬해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이범윤·안중근 등과 의병대를 조직하였으며, 성명회·권업회 결성에 참가하고 한성정부 평정관에 선출되었다. 1926년에는 만주에서 개최되는 민족혁신파대표대회에 참가하여 고려혁명당을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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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이길영(李吉永)[1928~2007]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규풍(李奎豊)[1865~1932]의 손자이며, 중국에서 활동한 이민호의 아들로 한국광복군에 참여하고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이길영의 본관은 덕수(德水), 이민호(李敏浩)[1895~1944]와 정수정의 아들이며 이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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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이단석(李端錫)[1625~1688]은 평소 언사가 준엄하여 남의 미움을 받게 되어 나주목사로 좌천되는 등 벼슬에 기복이 있었다. 가족이 궁핍을 면하지 못했다 할 정도로 청백리로도 이름이 났다. 이단석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유초(有初), 호는 쌍호당(雙壺堂)이다. 종실 경명군(景明君) 이침(李忱)의 후손으로 아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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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사망한 문신. 이만(李曼)[1605~1664]은 지방관으로 오래 있으면서 농사짓는 법 및 토질을 잘 가려내는 일에 탁월한 공이 있었으나 이재(理財)에 밝아 당시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시골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만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지만(志曼)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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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에 유배되었던 문신. 이민구(李敏求)[1589~1670]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직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로 충청도 아산에 유배되었다가 평안도 영변으로 옮겨졌다. 문장에 뛰어나고 사부(詞賦)에 능했으며, 평생의 저술이 4,000여 권이나 되었으나 전쟁으로 인한 화재에 거의 불타버렸다. 이민구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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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출신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 이민화(李敏華)[1898~1923]는 1917년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 교관,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에 종군장교로 참가하였으며, 독립군의 북정에 참가하여 러시아 자유시사변(自由市事變) 이후 고려혁명군 장교로 활동하였다. 1923년 노령(露領)과의 국경지대인 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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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 충신 정려가 세워진 무신이자 순절자. 이봉상(李鳳祥)[1676~1728]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켜 청주를 함락하였을 때 투항을 거부하고 죽었다. 이때 비장(裨將) 홍림(洪霖), 영장(營將) 남연년(南延年)도 함께 죽었다. 당시 충청감영에 들어온 이인좌가 항복할 것을 권하였지만 충무가(忠武家)의 충의(忠義)를 내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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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아산의 지방관이자 문신. 이성(李晟)[1251~1325]은 검소하고 허식이 없었으며, 젊어서부터 학업에 열중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지 학자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고 하며, 사람들은 이성을 ‘오경사(五經笥)’[오경에 능통한 사람]라고 불렀다. 이성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이성은 20세 전에 과거에 급제하여 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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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사람 이규갑과 혼인한 항일 독립운동가. 이애라(李愛羅)[1894~1922]는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가해 평양경찰서에 구금되었던 독립운동가이다. 애국부인회 활동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락 책임을 맡았으며, 1921년 만주로 망명 후 국내 연락 차 입국하던 중 체포되어 고문 끝에 순국하였다. 이애라는 시종무관인 이춘식의 셋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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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무신. 이인수(李仁秀)[1737~1813]는 강직한 품성으로 1803년(순조 3) 총융사(摠戎使)로 있을 때 부하 장교가 좌의정 서용보(徐龍輔)의 체모를 손상시킨 사건으로 추고(推考)를 당하려 하자 이에 항의하여 다투다가 파직되기도 하였다. 이인수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성빈(聖賓)이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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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출신의 문신. 이정운(李鼎運)[1743~1801]은 아산 신창 출신으로 1781년(정조 5) 홍충도(洪忠道)[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어 홍충도의 실정을 적나라하게 적발하였으며, 글을 잘 써서 명성이 높았다. 이정운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저(共著), 호는 오사(五沙)이다. 이제상(李濟相)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춘정(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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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이제형(李齊衡)[1605~1663]은 1658년(효종 9)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있을 때 윤선도(尹善道)가 올린 상소의 잘못된 점을 일일이 지적하여 명백하게 분별할 것을 효종에게 아뢰고, 이어서 윤선도의 관직을 삭탈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을 주청하기도 할 만큼 강직하였다. 이제형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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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이한일(李漢一)[1723~1791]은 1773년(영조 49) 과거 시험장의 질서를 단속하는 금란관(禁亂官)을 파면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처리하였다. 이한일이 쓴 방화산 산신제 축문(祝文)이 최근까지 전해져서 쓰였다고 한다. 이한일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중협(仲協)이다. 염치읍 백암리 출신으로 이석상(李錫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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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무공 이순신의 장남이자 무신. 이회(李薈)[1567~1625]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전쟁에 참가하였다. 뚜렷한 공로는 세우지 못했지만 숨은 공로가 인정되었고, 이순신이 2품직에 승진하면서 국법에 따라 음보(蔭補)[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음]를 통해 임실현감에 제수되었다. 이회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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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화천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임형선(林炯善)[1921~2005]은 1921년 5월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화천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평택이며, 예산공립농업학교 재학 때 한일학생 차별반대운동을 하였다. 고향에서 농민운동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일제에 다시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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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달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진수린(陳壽麟)[1898~1930]은 아산금융조합에 근무 중 공금을 빼돌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탈출, 군자금으로 헌납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재산계 서기로 근무하였다. 1927년 11월 재중국본부 한인청년동맹이 창립될 때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12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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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신화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한경석(韓慶錫)[1909~1951]은 1927년 조선학생혁명당에 가입하였다. 조선학생혁명당은 1929년에 조선학생전위동맹으로 개칭되었고, 한경석은 조직부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조선학생전위동맹은 중앙부원회를 개최하여 독서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한경석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 동조 시위에 참여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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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허옥(許沃)[1680~1744]은 주로 사간원과 사헌부의 관리로 지내면서 왕실의 재용(財用) 절약, 궁궐 소속 관리들의 횡포를 비판하였다. 허옥의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계중(啓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허감(許橄)이고, 할아버지는 허집(許緝)이다. 아버지는 양천허씨(陽川許氏) 아산 입향조(入鄕祖) 허린(許璘)이며,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