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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285
한자 溫惠里
영어음역 Onhe-ri
이칭/별칭 온계,온계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순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15.01㎢
총인구(남, 여) 401명(남자 206명, 여자 195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222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이황이 엮은 「온계전거사적(溫溪奠居事蹟)」에 따르면, 할아버지 이계양은 처음 예안현 동쪽 부라촌(浮羅村, 지금의 예안면 부포리)에 살았는데 봉화현 교도(奉化縣敎導)가 되어 봉화로 가는 길에 온계를 지나게 되었다. 이곳의 아름다운 산수에 취해 이리저리 거닐다가 신라현(新羅峴) 고개에 이르러 잠깐 쉬었는데 고개를 넘던 한 승려와 함께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가 온계의 풍수(風水)에 이르자 이계양은 승려와 생각이 같음을 기뻐하여서 승려와 손잡고 다시 온계로 돌아오니, 그 승려는 위아래로 오가며 두루 살피다가 현재의 종택 자리를 선정해 주었다고 한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 반드시 귀한 아들을 얻으리라”고 하여 이계양이 그 말을 따랐다고 한다.

그때는 온계 변에 한 집만 살고 있었으며, 둘레에 묵은 땅이 많아 농사지을 농토가 넉넉했고 물을 끌어다 논을 만들 수 있었으며, 나무숲이 울창하고 골짜기가 깊어 항상 맑은 냇물이 흐르고 물고기도 많았다고 한다. 이계양온계에 세거지를 마련하여 은거한 뒤 독실한 지행(志行)으로 한 생애를 학문에 침잠한 진사 이식(李埴)과 참판과 관찰사를 지내고 시문에 뛰어난 송재공(松齋公) 이우(李堣)를 낳았고, 이식이황을 낳음으로써 영남의 명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명칭유래]

예부터 온천(溫泉)이 있어서 여러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게 되었다는 뜻으로 온혜(溫惠)라 하였다. 또 마을 앞으로 흐르는 온혜천이 물이 따뜻하여 겨울에도 얼지 않으므로 온계(溫溪)라고 한 데서 온계 또는 온계촌(溫溪村)이라고도 하였다. 온계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둘째 형인 이해(李瀣)의 호이기도 하다.

[형성 및 변천]

온혜리는 주자학을 집대성한 대유학자인 이황이 태어난 곳으로 약 550년 전에 이황의 할아버지인 노송정(老松亭) 이계양(李繼陽, 1424~1488)이 처음 정착하였다. 조선 말기에 예안군 의서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곡리·고산리가 병합되어 온혜동이 되고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앞으로 도산면 용두산에서 발원한 온혜천(溫惠川)이 흐른다. 온혜천은 온천이 있어서 겨울에도 얼지 않으므로 온계(溫溪)라고도 부르는데, 북쪽 태자리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류하여 큰 내를 이룬 뒤 동남쪽으로 흘러 토계리에 이르러서는 퇴계(退溪)가 되고, 토계리의 남쪽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현황]

안동 시내에서 북쪽으로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국도 35호선을 따라 30㎞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5.01㎢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222세대에 401명(남자 206명, 여자 19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온혜1리·온혜2리·온혜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마을로 논실·건지골·동작골·고산·삐끼실·중마·합강·청계·배미골·평지·상촌 등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0호인 퇴계 태실(退溪胎室)이 있는 노송정 종택·삼백당 등이 있고, 명소로 도산온천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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