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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166
한자 皆谷里
영어음역 Gaeg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개곡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순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2.39㎢
총인구(남, 여) 186명(남자 83명, 여자 103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03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 말에 사복재(司僕齋) 권정(權定)이 접거(接居)하였으므로 접실이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영가지(永嘉誌)』에 “고려 신촌(愼村) 권사복(權思復)이 만년에 우거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이전에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검암리 일부가 통합되어 개곡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개곡리 곳곳에 진골·집골·불미골·도둑골·문니골·샘골 등의 골짜기가 있고, 접실 앞에는 등앞들이 펼쳐져 있다.

[현황]

남후면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2008년 12월 기준 면적은 2.39㎢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103세대에 186명(남자 83명, 여자 10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접실·말루골·아랫말루골·웃말루골 등이 있다. 특산물로 마늘, 양파, 수수, 배추, 무, 감자 등이 재배된다. 특히 예부터 접실무가 유명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에 영조(英祖)는 접실무의 맛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하에게 구해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안동 접실까지 가지 않고 한양의 동대문시장에서 무를 구해다 바쳤다. 영조가 접실무인지 확인하기 위해 장물에 담가 보았는데 보통 무와 같이 간장을 빨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신하는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다. 접실무는 간장에 담그면 바로 간장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접실에서 나는 무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고 두세 필지에서 생산되던 것들만 그러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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